얼마 전 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특위 위원장이 상속세 폐지를 주장했다. 강만수 위원장은 "미국, 일본, 한국 정도를 제외한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상속세를 폐지하고 있고, 상속세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 역시 소득세보다 높지 않다."고 했다. 그는 또 "상속세 때문에 자본 도피가 일어나고, 결국 우리 경제를 지키지 못하게 되므로 앞으로 국회를 잘 설득해서 상속세 폐지를 관철해야 한다."며 상속세 폐지를 거듭 강조했다. 우리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이와 같은 강만수 위원장의 주장에 몇 가지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현재와 같이 낮은 소득세 환경 속에서는 상속세를 폐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강만수 위원장은 스웨덴, 뉴질랜드, 포르투갈, 싱가포르 등 많은 나라에서 상속세를 폐지했다고 하지만, 이 나라들 중에는 이미 매우 높은 소득세율로 인해 충분히 소득재분배를 구현하고 있는 곳이 많다. 2006년 당시 스웨덴의 소득세율은 최고 57%에 이른 바 있다. 상속세 없이도 소득재분배를 이미 충분히 달성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유럽의 복지국가 수준으로 우리나라의 소득세 규모가 누진적으로 커진다면 상속세율 인하 혹은 폐지 주장을 검토해 볼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재와 같이 낮은 조세부담률 하에서 추진되는 상속세 폐지는 전체적인 부자감세 노선의 일환일 뿐이다. 

정부는 상속세 징수율이 낮고 전체 세수 규모도 총 재정의 1% 이내에 머무는 등 미미한 수준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상속 증여세 세수 규모는 약 1.2조 원에 달한다. 

국가의 재정적자가 날로 증가하고, 정부의 부자감세와 무리한 토목공사로 복지예산의 비중이 위축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것마저 폐지하자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사회의 한 쪽에서 감세가 이뤄지면 반드시 다른 한 쪽에서는 부담의 증가가 발생한다. 상속 증여세의 폐지는 세수의 감소를 초래해 근로소득자 등의 부담을 증가시키거나 복지혜택의 축소를 초래해 복지 수혜자들의 고통을 증가시키고, 사회통합의 저해와 사회불안의 확산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둘째, 가업승계를 지원해 장수기업을 육성해야 하는데, 상속세가 이를 방해한다는 주장은 일부 동의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꼭 상속세를 폐지해야만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이미 정부는 상속세 체제 안에서 가업승계지원제도를 운용 중이다. 가업상속재산 비율이 50% 이상이면 3년 거치 12년간, 50% 미만이면 2년 거치 5년간 세금을 나눠 낼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또, 가업을 10년 이상 영위한 경우 해당 가업의 상속재산에 대해서는 최대 100억 원까지 가업상속 공제를 해주고 있다. 즉 '가업'이라는 명분하에 100억 원까지는 상속세를 피해갈 수 있는 합법적인 길이 열려있는 것이다. 

일본과 독일 역시 비슷한 취지의 제도를 운용 중이다. 독일은 가업승계의 경우 상속세를 7년간 유예 후 일자리의 93%를 유지할 때 85% 면제받는 방안과, 상속세 10년간 유예 후 일자리 100% 유지할 때 100% 면제 받는 방안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는 이 정도 수준에서 충분히 장수기업 육성과 고용보장 등에 대한 세제상의 지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셋째, 재벌기업의 경영권 보호를 위해서 상속세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삼성 같은 거대 기업의 경우 대규모 상속세를 납부하게 되면 이른바 '오너'의 재배구조가 흔들릴 우려가 있다. 강만수 위원장은 "전문경영인 체제는 실패했다. 한국 사회가 오너 경영에 대해 부정적인 말이 많지만 오너 경영은 책임 있는 경영이라 볼 수 있다."고 말해, 재벌의 지배구조 유지를 위해 상속세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우회적으로 지원했다. 물론 재벌 시스템은 과거 압축 성장 시절에 민간부문의 장기 위험투자를 유치하는 등 일부 긍정적인 요소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상속세 때문에 재벌기업의 소유권이 외국으로 넘어갈 것이라는 주장은 지나친 우려에 불과하다. 현재도 이미 일부 거대 기업의 경우 외국인 지분이 내국인 지분을 초월한 상태이지만, 그 외국인 지분이란 것이 하나의 몸처럼 움직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재벌체제의 지배구조는 잘 유지되고 있다. 

우리는 국가가 주식으로 상속세를 납부 받고, 국가가 이 민간 기업의 주식 소유를 통해 지속적으로 배당 수입을 받는 방안에 대해 상당히 진지하게 검토하고 연구해 볼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하면, 민간 기업에 대한 국가의 지분 보유를 통해 상속세 때문에 오너의 경영권이 외국으로 넘어가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 또 국가는 초우량기업으로부터 지속적인 배당을 받게 되어 안정적인 세외수입을 창출할 수 있게 된다. 물론 현재도 주식을 통한 상속세 물납이 가능하지만 이 경우 자산관리공사가 이를 다시 공매에 넘겨 민간에 매각하므로 경영권 보장이 곤란해지는 문제가 있다. 

끝으로, 우리는 상속세의 상징성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흔히 건강한 자본주의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출발선이 똑같아야 한다는 말을 한다. 한 세대가 축적한 부는 기본적으로 세대를 넘어 그대로 이전되기 보다는 그 부를 창출하도록 도와준 해당 사회에 반납되어야 한다. 다음 세대는 모두 같은 출발선에서 다시 출발해야 하는 것이다. 

한번 형성된 부가 아무런 역동적 변화 없이 세대를 넘어 고정적으로 대물림 된다면 그 사회는 반드시 역동성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역동성을 상실한 자본주의는 사회적 자원 재분배에 기여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원의 회전과 선순환에도 별로 이바지할 수 없다. 우리가 국가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 강만수 위원장의 감세 소신이 국가경쟁력 발전에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할 것으로 보는 이유는 이런 맥락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란 버스 속의 의자와 같은 것이라서 잠시 앉아서 여행을 즐기다가 다음 사람에게 넘겨주고 나가야 하는 것이다. 나도 그 자리에 앉을 수 있다는 희망이 없어지고, 천년만년 똑같은 사람이 같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다면, 누가 그 버스를 타고 싶어 하겠는가? 

(2010년 6월 24일. 논평)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Trackback URL : http://basilica.co.kr/trackback/771 관련글 쓰기

« Previous : 1 : 2 : 3 : 4 : 5 : ... 696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