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과 국민행복은 비례하는가?
- Posted at 2009/02/17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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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 광 수 |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고문, 한국외대 스칸디나비아어과 명예교수
지난해 봄 모 인사는 기고문에서 ‘우리는 5,000년 만에 가장 행복한 세대’라고 하면서 일제 식민지 치하와 6.25 전쟁 이후 처절하게 배고프고 가난했던 민초들의 일상을 적나라하게 열거해가며 현란한 오늘의 발전상을 극찬하였다.
나아가 새 지도자에게 3만 달러 시대를 하루 빨리 열어 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조국 강산이 헐벗고 대다수 국민들이 하루 세끼 밥도 못 먹어 죽으로 연명하던 국민소득 60~70달러 시절을 떠올리면 기라성같이 치솟은 서울의 도시 아파트며 그 사이 사이를 홍수처럼 밀려가는 자동차 행렬은 분명 발전의 상징적 장관임에 틀림없다.
끼니 걱정은 흥부놀부의 동화에서나 나오는 옛 이야기고, 이제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너무 많이 잘 먹어 비만증이 신종 유행병처럼 번져가고 있다. 살 빼기 운동, 헬스클럽 단련, 건강식 타령이 텔레비전의 단골 메뉴로 등장한지 오래다. 휴전선 넘어 북쪽의 깡마르고 초췌한 아이들을 생각하면 면구스럽기까지 하다.
바야흐로 우리는 세계 11대 경제대국에, 국민소득 2만 달러, 연간 1000만 명이 해외 나들이를 즐기는 풍요로운 세상에 살고 있다. 나라 전체가 가난의 질곡에서 헤매던 오륙십년 전에 비하면 국민소득(GDP)이 무려 300배로 증가했으니 우리나라는 엄청나게 부자가 된 셈이다. 유럽의 선진국들이 100년 또는 200년 걸려 이룩한 국부와 과학 기술 문명을 불과 30여년 만에 이룩해냈다는 세계의 찬사도 받고 있다.
그러나 국민 모두가 고도성장의 혜택을 골고루 나누며 행복하고 평화롭게 잘 살고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부정적이다. 빈곤 아동의 22%가 하루 세끼를 다 먹지 못하고, 독거노인의 31%가 1주일에 한 끼를 거르며, 살 길이 막막하여 사랑하는 자녀와 일가족 자살을 택하는 참상이 우리 주변에 종종 일어난다. 우리사회의 빈곤층과 소외계층에게는 눈부신 경제발전과 현대화가 아무런 의미 없는 하나의 허상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과 절망감, 약자에 대한 배려 없는 불평등하고 부조리한 사회에 대해 증오심만 쌓이게 할 뿐이다.
그래서 잘사는 10퍼센트만을 위한 성장이라는 냉소적 혹평이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다. 국부가 늘면 늘수록 빈부의 양극화만 더 심화되는 현상은 지난 30년간의 압축 성장 과정에서 성장제일주의, 시장만능주의에 빠져 분배를 도외시 한 까닭이다. 경제성장만 잘 되면 그 부스러기와 국물만으로도 온 국민이 배불리 먹고 살수 있다는 안이하거나 무지한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복지제도는 성장을 저해하고 국민의 근로의식을 저하시키는 나쁜 제도라는 왜곡된 인식을 보수 언론은 국민들에게 퍼뜨리고 있다.
우리가 바라는 안정되고 화목한 삶을 위협하는 소요는 비단 부의 편중에만 있지 않다. 하루가 멀게 터지는 각종 사건과 사고, 묻지 마 살인, 화풀이 방화, 어린이 납치 살해, 성폭행 등은 진정 우리 국민이 그토록 땀 흘려 추구한 평화롭고 살맛나는 세상의 모습이 아니다.
그 원인은 정부 수립 이후 권력 차원의 각종 불법 비리가 정경유착, 권언유착으로 이어지고, 그런 부정부패의 심연 속에서 사회질서를 바로 잡고 약자를 지켜야 하는 사회정의가 실종된 탓이다. 게다가 1990년대에 불어 닥친 미국 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거센 물결은 비정규직과 같은 예비 실업자들을 양산해 내어 서민 대중들의 삶을 더욱 불안하고 힘겹게 만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세계화와 국제화의 요란한 구호 아래 경쟁만이 살길이다 라며 모든 것을 시장의 논리에 내 맡기려는 추세가 새 정부 들어서서 더욱 강화되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의 기본 작동원리는 개인의 이기심에 기초한 경쟁에 있기에 경쟁에서 이겨야만 이윤도 창출할 수 있고 시장도 확대할 수 있다.
갖은 지략과 수단을 총 동원하여 경쟁에서 이기면 성공하고 지면 망하는 것이 시장원리이다. 그래서 경쟁에 뛰어든 당사자들은 어제의 친구도 한순간에 적으로 돌변하고 만다. 최종목표는 이윤, 즉 돈이다. 돈이 모든 가치의 최고 자리에 올라섰다. 그래서 유능하고 힘 있는 사람들은 필요 이상의 재산을 모으기에 급급하다. 이른바 ‘강부자 내각’을 구성한 이 나라의 지도급 인사들이 그런 부류에 속해 세인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인간사회에는 경쟁 못지않게 협동과 단결, 연대와 공동체 정신도 필요하다. 지나친 경쟁은 수많은 낙오자들을 양산하여 사회를 파괴함은 물론 나아가 개인의 행복까지도 위협한다.
경제 활성화만으로는 양극화 해소가 어렵다는 연구 결과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빈곤과 불평등의 동향 및 요인 분해’ 라는 보고서로 나온 지 오래다. 성장의 과실이 골고루 분배되지 못해 서민 대중이 빈곤층으로 추락하지 않도록 사회안전망을 튼튼히 갖춰야한다.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은 일찍이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이와 같은 취약점을 간파하여 이미 1960년대에 사회적 인프라로서 포괄적 복지제도를 확립해 놓았다.
여기서 잠시 가난했던 1950~60년대를 돌이켜보자. 비록 헐벗고 배고픈 시절이었지만 교실 안의 동무들은 모르는 것을 서로 가르쳐주고, 누룽지 한쪽이라도 나눠 먹는 정다운 우정이라는 게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점수 경쟁에 내 몰린 아이들에게는 동무도, 친구도 없이 모두가 이겨내야 할 경쟁 대상자들일 뿐이다. 요즘 하도 세상이 흉흉하니 학교 선생님들의 등하교 길 주의사항이 ‘차조심, 길조심, 사람조심’이란다. 이웃집 아저씨가 갑자기 악한으로 돌변하여 나를 잡아가려하니 말이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 지경이 되어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고 오손 도손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을 경계해야 하는 살벌한 정글로 바뀌었는지 한심하다. 이것이 근대화와 경제 발전의 불가피한 부수적 현상이라면 차라리 덜 벌고 덜 먹더라도 인정이 있고 서로 믿고 배려하는 인간다운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래야만 형제간에 우애도 생기고, 이웃 간에 정도 트고, 민족 간에 사랑도 무르익어 평화 통일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이런 인간의 기본적 가치는 점점 사라지고, 오직 돈만이 판을 치는 천박한 사회풍조가 바뀌지 않은 채 3만 달러, 5만 달러 시대가 온다면 그 때는 얼마나 더 삭막하고 살벌해질지 상상만 해도 끔직하다.
※ 이 글은 ‘평화와 통일’ 31호에 게재한 내용을 필자가 수정 보완한 것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