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 넘치고 약자 배려하는 사회

[카라카스 문화기행]  

안태환 |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학술연구교수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를 여행하면서 가장 눈에 띈 것은 산꼭대기 빈민가로 오가는 케이블카였다. 지하철역과 달동네 사이의 수없이 많은 계단을 오르내리는 주민을 위해 설치한 것으로 ‘메트로 까블레’(지하철 케이블카)라고 했다. 케이블카는 오직 관광용이란 생각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한편 카라카스에는 서울 강남구 같은 차까오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에는 고층건물과 호사스런 호텔, 일류 식당들이 즐비하고 식당은 자본주의적 쾌락을 마냥 즐기는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유머담긴 반미 독설 

대통령 우고 차베스는 가끔씩 심한 반미주의적 독설을 쏘아대지만 그렇다고 베네수엘라의 사회문화 분위기는 경직된 사회주의 사회와는 다르다. 차베스는 유머를 담아 전략적인 언술을 구사하고 있다. 유머가 있는 대중 담론은 라틴 아메리카 일반대중의 무의식적 정서와 맞아서 설득력을 발휘한다.

일각에서는 설득력이 강한 언변과 카리스마로 대중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차베스를 가리켜 포퓰리즘 정치가라고 부른다.

라틴 아메리카의 문화는 유머와 아주 강한 친화성이 있다. 라틴 아메리카의 영화, 소설, 시 등은 사회의식이 강한 것이 특징인데 경직된 형식의 표현이 아니고 애매모호함과 유머로 표현한다. 그 철학은 권위적, 일방통행적인 기득권 문화를 풍자하여 웃음을 통한 전복의 미학을 보여준다.  

원래 라틴 아메리카는 일반적으로 소비성향이 높기로 유명한데 베네수엘라는 더 높기로 유명하다.

저소득층 대중이 잘 가는 상업 건물로 가면 어디서나 흔하게 눈에 띄는 것이 맥도날드 햄버거가게와 빵집인데 사람들이 크게 붐빈다. 가게 앞의 작은 광장에서는 젊은이들이 힙합 춤 경연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가격이 저렴한 현지 음식을 한 가지 소개하자면 옥수수로 만든 떡 속에 치즈를 끼워 넣어 만드는 아레빠이다. 이것을 맥주 또는 과야바, 과나바나 같은 열대 생과일 쥬스와 먹는 맛은 일품이다.  


카라카스 대폭동의 기억 

필자가 만나 같이 식사하던 대학교수는 베네수엘라는 왕년에 전 세계에서 일인당 위스키 소비량이 가장 높은 나라였다 자랑스러워하면서 계속해서 위스키를 시켰다.

인구 600만의 카라카스시에는 자동차가 엄청나게 많다. 석유가 나는 나라로 휘발유 값이 아주 저렴하여 누구나 차를 끌고 나오니 저녁 러쉬아워에는 길이 꽉꽉 막힌다.  

예전에 차베스가 등장하기 훨씬 전인 1989년, 당시 페레스 정부가 신자유주의적 경제 개혁정책을 통해 휘발유 값을 인상하고 버스 값을 대폭 인상하자 가난한 학생들과 노동자들은 상점으로 난입해 유리창을 깨고 식료품을 마구 약탈해 카라카스 대폭동(카라카소 : Caracazo)으로 번진 적이 있다.

이 사회적 항의의 대폭동은 베네수엘라에서 사민주의와 자유주의 우파의 보수양당체제가 무너지는 결과를 빚었다.

가난하다고 마구잡이로 식품을 약탈한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대빗 세돈과 존 월톤 같은 학자들은 이를 ‘윤리적 경제의 배신’으로 설명한다. 대가족은 먹을 것이 없는데도 가부장 혼자서 노름과 유흥으로 돈을 탕진하면 식구와 친척이 매우 분노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여기서 당국과 기득권층은 가난한 사람들이 최소한의 기본적 삶을 누릴 수 있게 보장해야 한다는 생각이 나온다.  

가난한 자의 국영 식품점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의 삶의 방식에 젖어있는 우리에게는 매우 낯설다. 우리는 신자유주의적 삶의 방식에 쉽게 동화하는 문화적 집단 무의식 같은 것이 있다고 본다.

라틴 아메리카의 가난한 사람들은 부유하게 사는 중산층 이상의 기득권세력에게 마치 맡겨둔 것을 내놓으라고 하듯 당당하게 ‘사회적 요구’를 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정치지형을 형식적 민주주의가 아니라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쪽으로 변하게 하는 눈에 잘 안 보이는 문화적 동력일지 모른다. 우리 사회의 유명한 정치학자들도 시민의 사회적 요구가 실질적 민주주의로 가는 이정표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파편화한 개인의 생존 욕망만 존재한다는 생각이 든다. 

베내수엘라는 빈민들을 위해 무상의료, 무상교육 등 다양한 ‘미시온’ (임무라는 뜻의 스페인어)을 채택하고 있다. 필자는 그중 하나로 메르칼 미시온을 소개하고 싶다. 차베스 정부는 메르칼이라는 국영 식품점을 열어 양질의 식품을 아주 저렴한 가격에 팔고 있다.

이곳은 가난한 사람들만 이용하는 줄 알았는데 누구나 갈 수 있다고 한다. 사람이 많아 줄을 한참 서야 한다. 그런데 베네수엘라 친구가 구입한 분유를 담은 비닐포장위에 무엇인가 작은 글씨들이 적혀있다. 자세히 보니 대중들이 보고 배우게 1999년에 제정한 신헌법의 조항을 인쇄한 것이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적성과 소질, 희망사항으로 인한 제약 외에는 모든 것이 동등한 조건과 상황에서 전인적이고 항상적인 양질의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제 103조였다. (언론인권회보 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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