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에 탄 숭례문의 질타

김민웅 / 성공회대 사회과학정책대학원 교수


오사카(大阪)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오사카 성의 아름다움이 유년시절 기억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일본이 세계에 자랑하는 이곳은 중세의 역사박물관인 동시에 시민 공원이기도 하다.  봄이면 민들레가 노란 휘장처럼 뒤 덮고 벚꽃과 소나무가 그림처럼 어우러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출처:  http://www.flickr.com 

일본의 근대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이 있기 전 거의 400년 가까이 존속했던 도쿠가와 바쿠후(德川幕府)가 서남 지역을 경영하면서 중심으로 삼았던 곳은 오사카였다. 오사카 성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를 필두로 한 도쿠가와 가문이,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일으킨 도요토미 가문의 마지막 세력을 척결하면서 승리하는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이 두 가문의 처절한 전투 가운데 불에 타 무너졌던 오사카 성은 이후 1629년 재건된 이래 몇 차례의 화재와 붕괴를 겪게 되지만 구마모토(熊本), 나고야(名古屋)와 더불어 일본의 3대 명성(名城)으로 남게 된다.  1868년 명치유신으로 세워진 정부의 군대와 낡은 세력이 되어버린 바쿠후 군대가 격돌하면서 승패가 갈라졌던 전투현장의 하나가 또한 이곳이다.  태평양 전쟁과정에서 화재로 적지 않은 부속 건물들이 소실되었지만 이후 오사카성은 지진에도 견딜 수 있도록 새롭게 축조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출처: http://www.flickr.com

일본에 가 본 사람들이라면 아주 분명하게 느끼겠지만, 일본사회가 자신의 역사적 문화재를 지켜내는 의식과 자세는 온 몸 구석구석에 배어 있다.  그러나 그 철두철미한 의식이 애초부터 자동적으로 생겨난 것은 아니었다.


1960년대 일본은 급속한 전후 복구와 경제성장으로 자신감을 회복하면서 서구화된 도시를 만들어나가는 일에 주력하게 된다.  이때 일본이 마주쳤던 문제는 자신들의 역사가 담겨 있는 전통 문화재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과제였다.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면서 일본적 미학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길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일본도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자신들의 문화재를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개발을 경험하게 되고 이를 통해, 도시의 현대적 변모는 문화재의 가치보다 우선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길은 다시 파고 웬만한 건물은 다시 지을 수 있다.  하지만, 역사를 품고 있는 문화재는 일단 손상되면 그 복구는 아무리 정밀하게 한다고 해도 본래의 가치는 결코 그대로 복원할 수 없다는 냉정한 진실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숭례문이 다 타버리고 만 사건으로 모두가 비통해하고 있다.  책임 논쟁도 격렬하다.  그러나 우리사회가 평소에, 자신의 역사를 담고 있는 문화적 유산에 대해 얼마나 철저하고 긴장된 의식을 가지고 있는지는 정작 성찰되고 있지 않다.  그것이 있는 사회와 없는 사회에서 역사적 보물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여기지 못하고 살아가는 나라에서 소중한 것이 어이없게 사라지는 것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뜻에서 비록 안타깝기는 하나, 처절하게 화상을 입은 숭례문은 섬세한 복구가 이루어지기전까지 적어도 수년간은 그대로 두고 깊고 깊게 우리의 교훈으로 삼을 수 있으면 어떨까 싶다. 우리의 무디고 무디어져버린 역사정신을 조상님들이 마음껏 질타하실 수 있도록 말이다.  지금 우린, 그 앞에서 너나 할 것 없이 들 낯이 없지 않은가?

* 이 글은 메트로 서울('08. 2. 13)과 동시 게재 되었습니다.

♡ 포스트 내용이 유익했으면 저의 블로그를 구독하세요 →


Trackback URL : http://basilica.co.kr/trackback/20 관련글 쓰기

  1. 숭례문 전소는 이명박 때문이다?

    Tracked from 我好美少女 2008/02/13 15:13 Delete

    예전엔 컸을지 모르지만, 현재에 와서 2MB는 너무 적은 용량, 모바일 기기도 28MB이상은 달려 나오는 현실. 그 속에서 2MB에게 조금이나마 기대를 가진 이들도 숭례문 사건으로 완전 실망. 아무리 후보들이 마음에 안 들었어도, 28MB는 잘못된 선택이라나 뭐라나. 이젠 조금이나마 용량을 늘려주어 28MB로 선언해야 할 때. 과거 N모씨 때문이라는 유행어가 세상을 휩쓸기도 했건만, 남탓하는 유행어는 언제나 지속적으로 생성되는 바. 이제 새롭게 28..

  2. 담장 쌓는 정부와 사과하는 국민들 - 숭례문화재 3일째

    Tracked from 낮은표현 in Tistory 2008/02/13 15:50 Delete

    화마가 숭례문을 삼킨지 3일. 다시 숭례문을 찾았습니다. 15미터짜리 대형 펜스를 크레인을 동원해서 숭례문 주변에 치고 있었고, 숭례문을 찾은 많은 시민들은 멀리 떨어져 숭례문을 애도하고 있었습니다. 화환과 국화꽃들이 쌓이고, 누군가 차례상을 차리고, 술과 향을 가져다 놓았습니다. 숭례문을 찾은 국민들을 참배하고, 애도하고, 석고대죄하고 있었습니다. 아이 손을 잡고 나온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왜 숭례문이 무너진 것이 슬픈 일인지를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3. 방화범을 숭례문앞에 서 있게 하면 어떨까

    Tracked from 토토의 느낌표뜨락 2008/02/13 18:24 Delete

    억울한 사연을 호소한답시고 국보급인 문화재 숭례문에 불을 지른 그 사람을, 참담한 몰골이 되어버린 숭례문앞에 5시간만 서 있게 하면 어떻게 될까요? 니탓이다 네탓이다 책임떠넘기기와 내편이다 네편이다로 편가르기 하느라고 시끄러운 상황은 또 어떤 변화라도 생길까요? 국화꽃이 놓인 숭례문의 처참한 몰골이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아니 우리들을 비웃고 있는 듯이 느껴집니다. "있을때 잘해^^" 유행가 가사를 통해서 널리 알려졌지만 우리의 삶속에서 이 말이 주..

  4. 불타버린 숭례문과 성냥팔이 소녀

    Tracked from 세상을 보는 또 다른 시선 2008/02/14 08:53 Delete

    지난 일요일과 월요일에 걸쳐서 숭례문이 불에 타서 2층 전각이 사라져 버렸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서 실제로 오늘 숭례문을 지나가면서 보자니 참 마음이 착잡한 것 같습니다. 600여 년이 넘게 그 자리에서 많은 환란을 거치면서도 굳세게 견디어 온 우리의 문화유산이 이렇듯 허무하게 불타버린 것에 대해서 마음 한 편으로는 아쉬움과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정부기관들에 대한 부아가 치밀어 오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언론의 보도형태를 바라..

« Previous : 1 : ... 676 : 677 : 678 : 679 : 680 : 681 : 682 : 683 : 684 : ... 696 : Next »